소요逍遙하는 까닭

글: 최윤정 / Choi Yoon-jung

2014

소요逍遙하는 까닭

'장공, 생각을 움직이니 눈앞에 다가오는 형상을 마주할 수 있었더냐' 최공, 2014년 6월 축사

글 ● 최윤정(지리산프로젝트 큐레이터/미술비평)

그의 자아는 옹고집이다. 아마도 이번 개인전에서 부각될 수 있는 중요한 지점은 동시대 젊은 예술가들의 행보 속에서, 그만의 특징으로 점유할 수 있는 바, 고전적 정신에 대한 동경이자 그것을 형상화하고자 준법을 연마하고 수행하는 과정을 작품을 통해 엿볼 수 있다는 점이다. 똑같게 모사하는 바라고 말할 수도 없지만, 그렇다고 이를 현대미술논의에서 말하는 차용이라 하기에도 애매한 구석이 있다. 그는 중국 산수화 대가들의 주요 작품을 '스스로 모사한다고 말한다.(작가는 이렇게만 말한다.)' 여기까지 보자면, 장병언 작가의 작업과정을 상세히 모르는 상태에서 때로 누군가는 그의 작품을 오해하고 옛것을 따라했다는 형식에만 그쳐 고루하게 보는 등 판단적 우를 범하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겠다.

그의 작업이 가지는 참신함을 발견하려면, 우선 그가 말하는 '모사'의 의미에 접근하는 단초가 필요하고 그것은 그의 작업과정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는 '모사' 자체로서의 진정성 그리고 또한 그것이 의미상 변경되고 확장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바다. 옛사람으로 태어났다면 힘들게라도 무수한 과정을 겪으며 원본을 쫒아 곁에 두고 혹은 장시간 작업하는 모사의 방법을 쓸 수 있겠지만, 지금에서 찾고자 하는 원본이란 박물관에 미술관에 고이 모셔져 있기에 곁에 두고 작업할 수 없는 안타까움이 있다. 허나 차라리 단순한 형식 모사에서 작가의 정신과 태도에까지 확장되고 무엇인가를 덧붙여 표현할 수 있는 여지가 이 때문에 역으로 열려있다고 볼 수 있다. 모사하고자 하는 작품의 최상도의 이미지를 수소문하여 가장 뛰어난 화질로 뽑은 종이를 들고 그것을 원본삼아(?) '모사'한다. 그의 고전은 따라서 완전하지 않다. 그렇기에 도리어 그 준법을 더욱 부각하고자 혹은 스스로의 성향에 맞추어 작가 특유의 고집스러우면서도 자유로운 정신에 의거, '모사'를 꾀할 수 있었던 바다. 대가들의 준법을 모두 익히겠다는 각오로부터 꾸준하게 오랜 기간 동안 스스로 '모사'를 이야기 하면서. 작가는 여기에 고전을 마주하는 무게감과 긴장감을 순간적으로 녹여버리는 유머러스한 자신의 도상을 덧붙였다. 그것은 고전에 대한 작가의 태도적 오마주이자, 그 세계에서 노니는 자신의 모습이다. 작가는 평소 산을 좋아하여 마음이 동하면 열 일 제치고 떠날 수 있도록 문 곁에 항시 등산용 모든 장비가 탑재된 가방을 준비해둔다 한다. 그냥 떠난다. 그의 성향은 온전히 독자적인 행동방식에 기반한다. 따라서 그의 옹고집은 절대적 힘에 의해 자신을 다른 것으로 화하게끔 하는 것이 아닌 그저 순전한 자아로서의 작가로 정립하도록 하는, 수월한 재료와 반짝 아이디어로 충분히 무장할 수 있는 이 시대에 자꾸만 인간적인 태도적인 궁금증을 유발하는 또 다른 참신함을 낳는 것이다.

인간이 지닌 본질적 성향이란 자연의 언어를 이해하고, 보다 다양한 것에서 기쁨을 느끼고자 하는, 이를 다양한 언어로 해석하거나 혹은 그 언어에 대답하고자 하는 모든 충동을 수반한다. 또한 모든 예술의 뿌리는 다양성 뒤에 숨겨진 거대한 통일성, 모든 존재자들의 근원과 피조물들 배후에 있는 창조자 혹은 에너지에 대한 호기심, 그리고 세계의 시원에 관한 비밀을 밝히고자 하는 관심에서 비롯된다고 본다면, 그에게 이러한 관심은 고전 산수화가들의 준법과 철학을 온몸으로 습하는 것에서 출발한다. 범관이 마치 비가 내리는 듯 점을 찍어, 산수를 유람하면서 직접 바라본 바들을 자신의 순전한 세계의 반영으로 표현하고자, 우점준을 사용했듯이 그리고 이당이 날카로운 것으로 찍어낸 듯한 기법으로 소부벽준을 활용하여 그만의 철학을 담은 산수를 표현했듯이, 또한 곽희가 자연을 소요하면서 자연을 총체적으로 담아내는 자기만의 시선을 리드미컬하게 연결한 삼원법으로 산수의 기를 보여주었듯이, 작가 장병언에게 고전 스승들이 전한 준법은 단순한 기법이라기 보다는 본인이 도달하고 싶은 작가로서의 이상향, 삶과 예술의 경지를 실험할 수 있게 하는 중요한 학습도구였다. 또한 이 고전스승들은 속세의 경험을 단순히 은둔자이기 보다, 준법을 통해 그들이 할 수 있는 규율, 즉 실천적 규범으로서 이를 제시하였다. 그들의 산수화가, 보통 산수화에 대해 무지한 현대인이 오해하는, 속세를 벗어나 은둔자의 삶을 지향한 혹은 현실정치와 무관한 자율성만을 보증하는 것은 아니었다. 도리어 그들의 산수화에는 속세의 거친 삶의 모습과 수행으로서 절대정신에 도달하고자 하는 삶 그리고 그 너머의 자연(신)의 본질과 원리에 도달하려는 세계가 담겨져 있다. 여기에는 합일의 경지에서 각자의 철학적 태도와 예술가로서의 특성적 면모도 함께 녹아있는 것이다. 다시금 산수화에 깃든 도교적인 이상향이란 별도의 것이 아니라, 그 구도와 준법에서 이미 현실을 동시에 반영하고자 하는 의지와 평행하게 존재한다는 것을 말하고자 하는 바다.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곽희의 조춘도, 이당의 만학송풍도, 범관의 계산행려도, 안견의 몽유도원도 등을 모사한 <旅조춘도>, <旅만학송풍도>, <旅계산행려도>, <旅몽유도원도> 등을 선보인다. 이 작품제목들도 그의 작업을 이해하는데 유머러스하면서도 중요한 지점이 된다. 말하자면 고전 스승의 그림들을 지속적으로 모사하면서 스스로의 준법들을 습하고 스승들이 자연과 세계를 소요하며 거두어낸 화폭에 스스로를 던져 본인이 그들의 작품에서 '소요해왔음 혹은 여전히도 유효함'을 보여준다. 그것을 그리며 익히며 행복을 느끼고 그들의 정신과 세계에 대한 철학을 체득하면서 깨닫는 그만의 감응적 세계. 한편, 시간이며 물리적 공간 어떤 것에도 걸림이 없는 무법자와 같은 개인성과 창작적 태도에서 장병언이라는 작가는 또한 자신의 속세적인 삶에서도 독자적으로 판단하고 행동하되 인간사회 자연의 규율에도 어긋나지 않는 아주 특이한 젊은 예술가이다. 저 고전 스승들이 다만 준법을 익히기 위한 도구적 스승들이 아니었음을 반증하는 부분이며, 또한 저 준법들이 기술로서의 화법이기 보다, 삶의 철학과 규율을 녹아낸 정신적 기법이라는 측면을 반증하는 부분이다. <끝>

후기: 작가와 나의 인연은 3년전 대구에서 시작되었다. 30대 중반의 전업작가 또래 작가들이 그 사이 개성 넘치는 그들만의 참신함들을 소개하고 있을 때, 장병언 작가는 그야말로 고전 산수화의 세계와 흠뻑 일체가 되었고 대학교육이 신통치 않음을 감히 '스스로' 깨닫고, 곧이어 '스스로' 스승을 정하여 그를 찾아 '사사받는' 형식을 과감히 '신선하게' 실천하고 있었다. 어떤 생각을 품고 살며, 그의 삶에는 어떤 층위들이 있는지 인간 자체가 궁금해지는, 신묘한 측면이 있는 작가이다. 나는 그것이 참으로 참신하다.

The Reason for Wandering Freely (逍遙)

“Master Jang, when you set your thoughts in motion, were you able to encounter the forms that come before your eyes?”

— Choi Gong, Congratulatory Address, June 2014

Text ● Choi Yoon-jung (Curator of the Jirisan Project / Art Critic)

His artistic self is stubborn. Perhaps one of the most notable aspects highlighted in this solo exhibition is that, among the diverse trajectories of contemporary young artists, his work occupies a distinctive position: a longing for the classical spirit and the disciplined process of practicing and refining traditional methods in order to embody that spirit in visual form.

It cannot be said that he simply reproduces works identically, yet it is also difficult to describe his practice as “appropriation” in the sense commonly discussed in contemporary art discourse. He himself merely states that he “copies” the major works of Chinese landscape painting masters. From this point of view, someone unfamiliar with the details of Jang Byeong-eun’s working process might easily misunderstand his work and fall into the mistaken judgment that it merely imitates the past, dismissing it as outdated.

To discover the originality within his work, one must first approach what he means by the word “copy.” The clue to this lies in his working process itself. It reveals both the authenticity of copying and the way in which its meaning is transformed and expanded. If one had lived in earlier times, it might have been possible to copy an original painting by keeping it close at hand and working beside it for long hours. Today, however, the originals we seek are preserved in museums, making it impossible to keep them nearby while working. Yet precisely because of this limitation, the act of copying can extend beyond mere formal imitation to include the artist’s own spirit and attitude, allowing something new to be added in the process. Jang searches for the highest-resolution images of the works he wishes to copy, prints them in the finest possible quality, and treats them as a provisional “original.” In this sense, his classical references are never complete. Precisely because of this incompleteness, however, he is able to emphasize the traditional brush methods even more strongly, or reinterpret them according to his own temperament. Guided by a stubborn yet free-spirited mindset, he undertakes the act of “copying.” For many years he has continued to speak openly about copying, sustained by a determination to learn the techniques of the great masters.

At the same time, he adds humorous personal icons to these works, momentarily dissolving the weight and tension that accompany the encounter with classical painting. These icons are both an homage to the classical tradition and a representation of himself wandering within that world. The artist is known to enjoy mountains so much that he keeps a backpack equipped with mountaineering gear by his door, ready to leave at any moment when the impulse strikes. He simply departs. His temperament is grounded entirely in his own independent mode of action. Thus his stubbornness does not rely on any external authority to transform him into something else. Rather, it allows him to establish himself purely as an artist grounded in his own self. In an age when artists can easily arm themselves with convenient materials and dazzling ideas, his attitude continually provokes curiosity about the human dimension of artistic practice, generating another form of freshness.

Human beings possess an essential inclination to understand the language of nature and to experience joy in diverse phenomena. This impulse includes the desire to interpret that language through various forms of expression or to respond to it. If the roots of all art lie in the immense unity hidden behind diversity, in curiosity about the origins of existence and the energy behind creation, and in a desire to uncover the secret beginnings of the world, then Jang’s interest begins with absorbing, through his entire being, the techniques and philosophies of classical landscape painters. Just as Fan Kuan used the raindrop-like texture strokes known as yu dian cun to express the landscapes he directly observed while traveling through mountains and rivers; just as Li Tang employed the axe-cut strokes of fu pi cun to articulate his own philosophical landscapes; and just as Guo Xi demonstrated the vital energy of landscape through the rhythmic linking of viewpoints in the Three Distances method—these techniques transmitted by the classical masters were, for Jang Byeong-eun, not merely technical devices but crucial learning tools through which he could experiment with the ideal realm he sought to reach as an artist: the stage where life and art converge.

Moreover, these classical masters did not simply withdraw from the secular world as hermits. Through their brush methods they proposed forms of discipline—practical norms that could guide life itself. Contrary to the misunderstanding of many modern viewers unfamiliar with landscape painting, their works were not expressions of escapism or indifference to reality. On the contrary, they contained visions of the harsh realities of worldly life, the pursuit of an absolute spirit through cultivation, and the effort to approach the essence and principles of nature beyond it. Within this unity are also embedded each master’s philosophical stance and artistic individuality. Thus the Daoist ideal often associated with landscape painting is not something separate from reality; rather, it exists in parallel with a will to reflect reality through composition and technique.

In this exhibition, the artist presents works such as Traveling Early Spring, Traveling Windy Pines Among a Myriad Valleys, Traveling Travelers Among Mountains and Streams, and Traveling Dream Journey to the Peach Blossom Land, which are based on Guo Xi’s Early Spring, Li Tang’s Windy Pines Among a Myriad Valleys, Fan Kuan’s Travelers Among Mountains and Streams, and Ahn Gyeon’s Dream Journey to the Peach Blossom Land. Even the titles of these works contain a humorous yet significant clue to understanding his practice. By continuously copying the works of classical masters, he absorbs their techniques and metaphorically throws himself into the pictorial worlds they created while wandering through nature. Through this process he demonstrates that he has wandered within those works—and that their spirit remains valid even now. In copying and learning these paintings he experiences joy and internalizes their philosophical view of the world, gradually awakening his own responsive realm of perception.

Meanwhile, Jang Byeong-eun also possesses a distinctive individuality and creative attitude that seems almost lawless, unconstrained by time or physical space. In his worldly life as well, he makes independent judgments and acts accordingly, while still remaining in harmony with the principles governing both human society and nature. This demonstrates that the classical masters he studied were not merely instrumental teachers of technique. It also reveals that their brush methods were not simply technical devices but spiritual practices infused with philosophy and ethical discipline.

〈End〉

Epilogue

My connection with the artist began three years ago in Daegu. At a time when many full-time artists in their mid-thirties were presenting works filled with distinctive individuality, Jang Byeong-eun had immersed himself completely in the world of classical landscape painting. Realizing for himself that university education alone was insufficient, he boldly and refreshingly put into practice a traditional mode of learning: he chose a master on his own initiative, sought him out, and studied under him directly.

He is an artist whose life and thinking provoke curiosity about the human being behind the work, revealing layers of experience that feel almost mysterious. To me, this quality is truly refreshing.

逍遥的缘由

“张公,当思想开始运转之时,你是否能够直面眼前浮现的形象?”

—— 崔公,2014年6月贺辞

文 ● Choi Yoon-jung(智异山项目策展人 / 美术评论家)

他的自我带有一种固执的气质。也许在这次个人展览中最值得被凸显的一点是:在当代年轻艺术家的各种行进路径之中,他占据着属于自己的独特位置——那是一种对于古典精神的向往,以及为了将这种精神具象化而反复锤炼、实践传统皴法与笔法的过程,这一点可以从他的作品中窥见。

他的创作不能简单地说是完全相同的“临摹”,但若将其归入当代艺术讨论中所谓的“挪用(appropriation)”,似乎又并不完全恰当。他自己只是说,他“在临摹中国山水画大师的重要作品”。如果只看到这一点,在不了解张炳彦创作过程的情况下,有时确实会有人产生误解,只停留在“追随古人”的表面形式,从而做出将其视为陈旧的判断。

若要发现他作品中的新意,首先需要接近他所说的“临摹”这一概念的真正含义,而这一线索正存在于他的创作过程之中。那里既呈现出“临摹”本身的真实性,也展示了这种行为在意义上的改变与扩展。若是生于古代,人们或许可以历经种种艰难过程,将原作置于身旁,长时间面对原作进行临摹。然而在今天,我们所寻找的原作往往被珍藏在博物馆与美术馆之中,无法放在身边进行创作,这无疑令人遗憾。但正因为如此,临摹反而不再局限于单纯的形式复制,而可以扩展到艺术家的精神与态度,并在其中加入新的表达空间。

他四处寻找所要临摹作品的最高分辨率图像,并以最好的画质打印出来,将其视作某种“原本”,再进行临摹。因而,他所面对的“古典”并不是完整的。正因为这种不完整,他反而能够更加强调传统皴法,并根据自身的性情,以一种既固执又自由的精神展开临摹。从立志掌握大师们全部皴法的决心开始,他在长时间的创作过程中始终坚持谈论“临摹”。

同时,他又在这些作品中加入自己幽默的图像,使得面对古典时所带来的重量与紧张感在瞬间被消解。这些图像既是他对古典的态度式致敬,也是他在那一世界中游玩的身影。据说他平日十分喜欢登山,因此在家门口总是准备着一只装满登山装备的背包,只要心念一动,便可以把手头的一切事情放下立刻出发。说走就走。他的性格完全建立在独立的行动方式之上。因此,他的固执并不是依赖某种绝对力量来改变自己,而是使他以一种纯粹的自我确立为艺术家。在这个可以轻易依靠便利材料与闪耀创意武装自己的时代,他这种带有人性温度的态度反而不断引发人们的好奇,并产生出另一种新的活力。

人类的本质倾向在于理解自然的语言,并在多样的事物之中感受喜悦,这种倾向伴随着一种冲动:用各种语言去解释这种语言,或者对其作出回应。如果说一切艺术的根源在于隐藏在多样性背后的巨大统一,在于对万物之源、对创造者或能量的好奇,以及对世界起源秘密的探索,那么对于张炳彦来说,这种兴趣正是从以身体去学习古典山水画家皴法与哲学开始的。

正如范宽以雨点般的点皴描绘山川,在山水游历之中表达自己所见世界的映像;又如李唐以斧劈皴般的锐利笔法构建具有个人哲学的山水;再如郭熙在自然中逍遥,通过连接多重视角的“三远法”展示山水之气。对于艺术家张炳彦而言,这些古典大师传下来的皴法并不仅仅是技术,而是使他能够实验自己理想中艺术境界的重要学习工具——那是生命与艺术合一的境界。

此外,这些古典大师并非单纯以隐士的姿态远离尘世,而是通过皴法提出一种可以实践的规范。对于那些不了解山水画的现代人来说,常常误以为山水画只是脱离现实的隐逸生活的象征,或者是一种与现实政治无关的自主空间。然而事实上,在他们的山水画中,既包含尘世生活的艰辛,也包含通过修行抵达绝对精神的生命追求,以及试图接近自然(神)的本质与原理的世界。在这种合一的境界之中,也融入了各自的哲学态度与艺术家特有的个性。换言之,山水画中所体现的道家理想并不是脱离现实而存在的,它与试图在构图与皴法中反映现实的意志始终并行。

在本次展览中,艺术家呈现了《旅·早春图》《旅·万壑松风图》《旅·溪山行旅图》《旅·梦游桃源图》等作品,分别临摹自郭熙的《早春图》、李唐的《万壑松风图》、范宽的《溪山行旅图》以及安坚的《梦游桃源图》。这些作品标题本身也成为理解其创作的一处幽默而重要的线索。换言之,通过持续临摹古典大师的作品,他不仅学习了他们的皴法,也将自己投入到那些大师在山水游历中所获得的画面世界之中,从而展现出自己在这些作品之中“逍遥过”,并且这种精神至今仍然有效。

在绘制与学习这些作品的过程中,他感受到快乐,也逐渐体悟大师们对于世界与自然的哲学,从而形成属于自己的感应世界。同时,在一种仿佛不受时间与空间限制的个人性与创作态度之中,张炳彦也在现实生活里独立地判断与行动,却又不违背人类社会与自然的规律。这恰恰说明,这些古典大师并不是仅仅作为学习皴法的工具性老师存在;同时也说明,这些皴法并非只是技术层面的画法,而是一种融入了人生哲学与规范的精神性技法。

〈完〉

后记

我与艺术家的缘分始于三年前的大邱。当时许多三十多岁的职业艺术家正不断展示他们各具个性的创作时,张炳彦却完全沉浸在古典山水画的世界之中。他大胆而“新鲜”地实践了一种方式:在意识到大学教育并不足够之后,自己选择老师,并主动前去拜师学习。

他是一个令人好奇的艺术家——人们会不由得想知道,他怀着怎样的思想生活,他的生命又包含着怎样的层次。这种带有某种神秘气质的特质,在我看来正是一种真正的“新鲜”。

逍遥する理由

「張公、思いを動かしたとき、目の前に迫る形象と向き合うことができたのか。」

— 崔公、2014年6月祝辞

文 ● Choi Yoon-jung(智異山プロジェクト・キュレーター/美術評論家)

彼の自我は頑固である。おそらく今回の個展において強調されるべき重要な点は、同時代の若い芸術家たちの歩みの中で、彼だけが占めうる特徴として、古典的精神への憧れ、そしてそれを形象化するために皴法を磨き修練していく過程を作品からうかがうことができるという点である。

それを完全な模写だと言うこともできないが、かといって現代美術の議論で言うところの「アプロプリエーション(appropriation)」と呼ぶのもどこか適切ではない。彼自身はただ、中国山水画の巨匠たちの主要な作品を「自ら模写している」と語るだけである。(作家はそれ以上のことを語らない。)ここまでだけを見れば、張炳彦という作家の制作過程を詳しく知らない人々は、彼の作品を誤解し、単に古いものをなぞっただけの形式にとどまると判断して、古臭いものとして見てしまうという判断上の誤りを犯す可能性もあるだろう。

彼の作品が持つ新鮮さを発見するためには、まず彼が語る「模写」という言葉の意味に近づく手がかりが必要であり、それは彼の制作過程の中に見出すことができる。それは「模写」そのものとしての真摯さ、そしてその意味が変化し拡張していることを示している。もし昔の時代に生まれていたならば、数多くの過程を経ながら原作を追い求め、それをそばに置いて長時間制作するという模写の方法をとることもできただろう。しかし現在では、求める原作は博物館や美術館に大切に収蔵されているため、それをそばに置いて制作することはできないという残念さがある。だがそのことによって、単なる形式の模写から作家の精神や態度へと拡張し、何かを付け加えて表現する余地がむしろ開かれているとも言える。

模写しようとする作品の最高解像度の画像を探し出し、最も優れた画質で印刷した紙を手にして、それを原本として(?)「模写」する。したがって彼にとっての古典は完全なものではない。だからこそ、その皴法をむしろ際立たせ、自身の性向に合わせて、作家特有の頑固でありながら自由な精神に基づいて「模写」を試みることができたのである。巨匠たちの皴法をすべて身につけるという決意から、長い時間にわたって自ら「模写」を語り続けてきた。

さらに彼は、古典に向き合う際の重みと緊張を一瞬で溶かしてしまうような、ユーモラスな自身の図像をそこに加える。それは古典に対する作家の態度的なオマージュであり、その世界の中で遊ぶ自身の姿でもある。作家は普段から山を好み、気持ちが動けばすぐに出発できるように、玄関のそばには登山装備一式を備えたバッグを常に置いているという。彼はただ出かけるのである。彼の性向は完全に独自の行動様式に基づいている。

したがって彼の頑固さとは、絶対的な力によって自らを別のものへと変えることではなく、純粋な自我としての作家を成立させるものである。手軽な素材やきらびやかなアイデアで十分に武装できるこの時代において、彼の態度はむしろ人間的な側面への関心を呼び起こし、別の意味での新鮮さを生み出しているのである。

人間の本質的な性向とは、自然の言語を理解し、より多様なものの中に喜びを見いだそうとすることであり、それをさまざまな言語で解釈し、あるいはその言語に応答しようとする衝動を伴う。もしすべての芸術の根源が、多様性の背後に隠された巨大な統一、すべての存在の根源や創造の背後にあるエネルギーへの好奇心、そして世界の起源の秘密を解き明かそうとする関心にあるのだとすれば、彼にとってその関心は古典山水画家たちの皴法と哲学を全身で学ぶことから始まる。

范寛が雨のような点を打つ皴法によって山水を描き、山川を遊歴しながら見たものを自身の世界として表現したように、また李唐が斧で刻んだような皴法によって独自の哲学を持つ山水を描いたように、さらに郭熙が自然の中を逍遥しながら「三遠法」によって山水の気を示したように、張炳彦にとって古典の師たちが伝えた皴法とは単なる技術ではなく、作家として到達したい理想の境地、すなわち人生と芸術の境界を実験するための重要な学習の道具であった。

またこれらの古典の師たちは、世俗の経験を単に隠遁として生きたわけではなく、皴法を通じて彼らが実践できる規律、すなわち実践的規範を提示したのである。彼らの山水画は、山水画に無知な現代人がしばしば誤解するような、世俗を離れた隠者の生活を志向したものでも、現実政治とは無関係な自律性を保証するものでもなかった。むしろそこには、世俗の荒々しい生活、修行によって絶対精神へ到達しようとする人生、そしてその向こう側にある自然(神)の本質と原理へ到達しようとする世界が描かれている。そこには合一の境地の中で、それぞれの哲学的態度と芸術家としての個性も溶け込んでいるのである。

改めて言えば、山水画に宿る道教的理想とは現実と切り離されたものではなく、構図と皴法の中で現実を同時に映し出そうとする意志と並行して存在しているのである。

作家は今回の展覧会で、郭熙の《早春図》、李唐の《万壑松風図》、范寛の《溪山行旅図》、安堅の《夢遊桃源図》などを模写した《旅・早春図》《旅・万壑松風図》《旅・溪山行旅図》《旅・夢遊桃源図》などを発表する。これらのタイトルもまた、彼の作品を理解するうえでユーモラスで重要な手がかりとなる。

つまり古典の師たちの絵を繰り返し模写することで自らの皴法を習得し、彼らが自然と世界を逍遥して得た画面の中に自らを投げ込み、その作品の中で自分自身が「逍遥してきたこと」、あるいは「今もなお有効であること」を示しているのである。それを描き、学び、幸福を感じながら、彼らの精神と世界観を体得していく中で生まれる彼自身の感応の世界。

一方で、時間や物理的空間に束縛されないかのような個人性と創作態度を持つ張炳彦という作家は、世俗の生活においても独自の判断で行動しながら、人間社会や自然の規律にも反することのない、きわめて特異な若い芸術家である。それは古典の師たちが単なる技術の教師ではなかったことの証であり、また皴法が単なる技術ではなく、人生の哲学と規律を内包した精神的技法であることを示しているのである。

〈終〉

後記

作家との縁は三年前、大邱で始まった。三十代半ばの専業作家たちがそれぞれ個性に満ちた作品を発表していた頃、張炳彦はまさに古典山水画の世界と深く一体となっていた。そして大学教育が十分ではないことをあえて「自ら」悟り、その後「自ら」師を定め、訪ねて教えを受けるという形式を大胆かつ「新鮮に」実践していた。

どのような思想を抱き、どのような層を持った人生を生きているのか、人間そのものに興味を抱かせる不思議な側面を持つ作家である。私にはそれが実に新鮮に感じられ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