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노트 202012
20대 중반 예술가의 길을 가고자 마음먹은 뒤 내 작업의 화두는 고전과 여행으로 압축되었다. 동양의 고전회화를 보면서 큰 감동을 받았으며, 그곳으로 들어가 여행을 시작했다. 또한, 그 속에서 만난 이들과의 문답을 통해 예술관이 형성되기 시작하였고, 예술가로서 가야 할 방향성을 정리했다.
앞으로 山水, 즉 인류가 발 딛고 있는 이 광활한 대지를 담고자 한다. 더 이상 고전에 머무르고 있는 옛것이 아니라, 지금 현재 우리가 발 딛고 있는 거대하면서 소소하고, 평온하면서 맹렬하게 움직이고 있는 이 땅을 담아내는 것에 가장 행복을 느낀다.
유년시절에 겪은 영향인지는 모르겠으나 대학진학 후 ‘수묵’과 ‘산수’를 표방하는 화가로 성장하고 싶은 욕구가 생기게 된다. 대학시절 당시 어떤 장르의 예술이든 앞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습득’해야만 하는 기술적 문제가 수반된다고 생각했다. 이런 문제의식을 가지고 선택했던 것이 바로 서예이다. 서법, 즉 붓을 다루는 훈련을 통해 운필에서 좀 더 자유로워지는 것이 이 시점에서 가장 필요한 작업이라 여겼다. 이렇게 대학시절은 스스로 문제를 인식하고, 기법적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것으로 정리되었다.
졸업 후 한국화의 원류를 찾아가는 과정에서 고대산수, 그중에 특히 중국 북송대 그림들에 매료되었고, 선대의 화가가 만들어 놓은 다른 차원의 거대한 자연 속을 여행하기로 한다. 마치 가파른 산길을 갈 때 호흡을 조절하듯, 호흡을 가다듬으면서 획을 그어 나가는 무모한 작업을 반복하며, 나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질문과 답변을 반복한다. 실제 거의 모든 작품 속에는 배낭을 메고 산길을 오르고 있는 나 자신이 작게 그려져 있다. 이것은 단순히 거장의 그림을 베껴내는 것으로만 끝내지 않겠다는 표식이며, 나아가 그들이 구축하고 이루어낸 조형의 세계에 서려있는 정신을 탐구하고자 하는 의지인 셈이다. 어찌 보면 이 과정이 ‘모사’라는 단순한 행위로 볼 수도 있다. 하지만 나에게 있어 그들의 산수는 자유롭게 거닐 수 있고, 시간적·물리적 어떠한 것에도 걸림돌 없는 공간, 그리고 무한한 상상력을 제공했던 셈이다.
이러한 과정을 걸어오다 보니 어느 순간 새로운 호기심이 생겨났다. 현대 모든 창작물은 ‘편집의 예술’이라고 했던가? 지금까지 고전 속을 걸으며 접했던 산수의 파편을 가져와 내가 보고 싶은, 혹은 내가 원하는 곳에 배치를 해보면 어떨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수많은 고전 명화를 접하면서 가장 마음이 갔던 화가, 나무, 바위, 구름 등을 가위로 오려내고 다시 적절한 곳에 배치해서 나 스스로가 보고 싶었던 장면을 연출하는 작업을 진행하였다. 마치 관념산수의 꿈을 보겠다는 심정으로 말이다. 그 결과물의 초안이 포트폴리오에 삽입되어 있는 ‘홍중산수(2016)’이다.
이 작업(편집된 산수)은 처음에는 호기심으로 시작하였으나 고전 그림 속을 걸어왔던 여정을 일단락 정리하는 작업이 되었다고 생각된다. 이렇게 17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얼마 전부터 본격적으로 사생을 하러 다니기 시작했다. 이전까지 경험했던 관념의 세계와 사생을 통해 눈앞에 펼쳐진 실제의 세계가 서로 충돌을 겪고 있다는 것을 내 몸으로 느낀다. 그리고 붓끝에서 바로 반응한다. 혼란스럽긴 하나, 이건 내가 선택한 것에 대한 지금까지의 결과물이다. 이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관념과 실체를 바라보는 관점은 각기 다르겠지만 이제부터 내가 해야 되는 작업은 관념으로 치우친 무게추를 실제적 측면과 균형을 이루도록 만드는 작업이 아닐까 한다. 나는 지독하게 편식을 해왔고, 고립된 환경에서 그림을 그려온 사실을 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그 결과 내 작업의 결과물에는 사회성이 결여되어 있으며, 학문적 깊이가 없다 보니 고아한 정취가 아쉽다. 다행스러운 것은 나에게 주어진 시간이 아직 남아 있으며 내가 가진 결함을 충분히 극복할 수 있음을 스스로 믿는다. ‘모방, 변형, 창조’라고 하는 과정 속에서 나는 과연 어디쯤 서 있을까? 항상 스스로에게 묻고 끊임없이 성찰한다.
2020 12 작가노트
Artist Note 2020.12
In my mid-twenties, after deciding to pursue the path of an artist, the central theme of my work came to be summarized in two words: classical tradition and journey. I was deeply moved by classical East Asian paintings and began a journey into that world. Through imagined dialogues with the figures I encountered there, my artistic perspective gradually began to form, and I was able to clarify the direction I should take as an artist.
From now on, I hope to depict the vast land upon which humanity stands. Rather than remaining within the past preserved in classical works, I find the greatest happiness in capturing the land on which we stand today—immense yet humble, tranquil yet fiercely in motion.
Perhaps influenced by experiences from my childhood, after entering university I developed a desire to grow as a painter devoted to ink painting and landscape painting. During my university years, I believed that in order for any form of art to develop further, it must inevitably confront technical problems that must be acquired through training. With this awareness, I chose calligraphy. Through the discipline of brushwork—that is, training in handling the brush—I believed that gaining greater freedom in the movement of the brush was the most necessary task at that time. Thus my university years were largely a period of recognizing problems on my own and attempting to resolve technical issues.
After graduation, while searching for the origins of Korean painting, I became fascinated with ancient landscape paintings, particularly those of the Northern Song dynasty in China. I decided to travel within the immense natural world constructed by the painters of the past. Like adjusting one’s breathing while climbing a steep mountain path, I repeatedly performed the reckless act of drawing strokes while regulating my breath, continually asking and answering questions to myself. In fact, in almost all of my works a small figure of myself can be seen climbing a mountain path with a backpack. This is a sign that I did not wish to stop at merely copying the works of great masters, but rather intended to explore the spirit embedded in the formal worlds they constructed and achieved. From another perspective, this process may appear to be nothing more than the simple act of imitation. However, for me their landscapes were spaces where one could wander freely, unconstrained by time or physical reality, and they offered an infinite realm of imagination.
Walking along this path eventually led me to a new curiosity. It is often said that all modern creation is an “art of editing.” I began to wonder what might happen if I took fragments of landscapes encountered while wandering through classical paintings and placed them where I wished or where I wanted to see them. After encountering countless classical masterpieces, I began cutting out elements that most captivated me—painters, trees, rocks, clouds—and rearranging them into new compositions in order to construct scenes that I myself wished to see. It was almost as if I were trying to witness the dream of an ideal landscape. The preliminary result of this experiment is the work Hongjung Landscape (2016) included in my portfolio.
This work (Edited Landscape) began as a curiosity, but it eventually became a way of organizing and concluding the long journey I had taken through classical paintings. Seventeen years passed in this way.
Recently, I have begun going out to draw from direct observation in earnest. I can physically feel the collision between the conceptual world I had experienced before and the real world that unfolds before my eyes through sketching from life. The brush responds immediately at its tip. Although confusing, this is the natural result of the path I have chosen. Perspectives on concept and reality may differ, but perhaps the work I must now undertake is to restore balance between the weight that has leaned toward conceptual thinking and the actual world. I know better than anyone that I have been extremely selective in my interests and have painted in an isolated environment. As a result, my work lacks social awareness, and without academic depth, a certain refined atmosphere feels missing. Fortunately, I still have time, and I believe I can overcome my shortcomings. Within the process of “imitation, transformation, and creation,” I continually ask myself where I stand. I constantly question myself and reflect without ceasing.
Artist Note, December 2020
艺术家笔记 2020.12
在二十多岁中期,当我决定走上艺术家的道路之后,我创作的主题逐渐被浓缩为两个词:古典与旅行。我在观看东亚古典绘画时深受感动,并由此开始进入那个世界进行一场精神上的旅行。同时,通过与其中人物的想象性对话,我的艺术观逐渐形成,也逐渐明确了作为艺术家应当前行的方向。
今后,我希望描绘的是人类所立足的这片广阔大地。不再停留在古典绘画所呈现的过去,而是在当下去表现我们脚下这片土地——既宏大又细微,既宁静又猛烈地运动着的世界。在描绘这样的现实大地之中,我感到最大的快乐。
或许是童年经历的影响,在进入大学之后,我产生了希望成为一名以水墨和山水为志向的画家的愿望。在大学时期,我认为无论是哪一种艺术类型,如果想要成长,就必然伴随着必须通过训练去“习得”的技术问题。带着这样的意识,我选择了书法。通过书法,也就是对毛笔运用的训练,使自己在运笔上获得更大的自由,是当时我认为最重要的课题。因此,我的大学时代基本上是在不断发现问题并尝试解决技法问题的过程中度过的。
毕业之后,在寻找韩国绘画源流的过程中,我被古代山水画所吸引,尤其是中国北宋时期的山水画。我决定进入前人画家所构建的那个不同维度的宏大自然之中旅行。就像在陡峭的山路上行走时需要调整呼吸一样,我一边调节呼吸,一边反复进行看似鲁莽的运笔练习,同时不断向自己提出问题并给予回答。事实上,在几乎所有作品中,都能看到一个背着背包、正在攀登山路的微小人物——那就是我自己。这不仅意味着我不愿仅仅停留在复制大师作品的层面,更是希望探索他们所构建的造型世界中所蕴含的精神。从某种角度看,这个过程也许只是“临摹”的行为。但对我来说,他们的山水是一个可以自由漫游的空间,不受时间或物理限制,并给予我无限的想象力。
在经历这一过程的某个时刻,我产生了新的好奇。有人说,现代一切创作都是“编辑的艺术”。那么,如果把我在古典绘画中所见到的山水片段取出来,放置在我想看到或想要的位置上,会发生什么呢?在接触了无数古典名作之后,我把最吸引我的画家、树木、岩石、云等元素剪裁出来,再重新组合在合适的位置上,构建出我自己想看到的场景。这就像试图看到一种观念山水的梦境。这个尝试的初步成果就是收录在作品集中《洪中山水(2016)》。
这个作品系列(编辑的山水)最初只是出于好奇而开始,但最终却成为对我长期在古典绘画世界中旅行的一次阶段性整理。就这样,十七年的时间过去了。
不久之前,我开始真正地走向户外进行写生。我可以清楚地感受到,过去所经历的观念世界与通过写生所面对的现实世界正在发生碰撞,并且这种碰撞直接在笔端显现出来。虽然有些混乱,但这正是我所选择道路的自然结果。观念与现实的视角或许不同,但今后我所要进行的工作,也许正是让偏向观念的一端与现实层面重新取得平衡。我非常清楚,自己一直以来过于偏食,在相对孤立的环境中进行创作。因此,我的作品缺乏社会性,也因为缺少学术深度而略显缺乏一种高雅气质。幸运的是,我仍然拥有时间,并且相信自己能够克服这些缺点。在“模仿、变形、创造”的过程中,我究竟站在什么位置?我始终不断地向自己提问,并持续进行反思。
2020年12月 艺术家笔记
作家ノート 2020.12
二十代半ばに芸術家の道を歩もうと決意してから、私の制作の主題は「古典」と「旅」という二つの言葉に集約された。東洋の古典絵画に触れて深い感動を覚え、その世界へと入り込み旅を始めた。また、その中で出会った人物たちとの想像上の対話を通して芸術観が形作られ、芸術家として進むべき方向性が整理されていった。
これから私は、人類が足を踏みしめているこの広大な大地を描きたいと思う。もはや古典の中に留まる過去ではなく、いま私たちが立っているこの土地――巨大でありながらささやかで、静かでありながら激しく動いているこの世界を描き出すことに、私は最も大きな喜びを感じている。
幼少期の経験の影響かもしれないが、大学に進学してから私は水墨と山水を志向する画家として成長したいという願いを持つようになった。当時の私は、どのジャンルの芸術であっても成長するためには必ず習得しなければならない技術的課題が伴うと考えていた。その問題意識のもとで選んだのが書道である。書法、すなわち筆の扱いを訓練することで運筆をより自由にすることが、この時期に最も必要な作業だと考えたのである。このように大学時代は、自ら問題を認識し、技法上の問題を解決していく時間として整理することができる。
卒業後、韓国画の源流を探る過程で古代山水画、とりわけ中国北宋時代の絵画に魅了された。そして先人の画家たちが築き上げた別次元の巨大な自然の中を旅することを決意した。急な山道を登るときに呼吸を整えるように、呼吸を調整しながら筆を運ぶ無謀とも言える作業を繰り返し、自分自身に絶えず問いと答えを繰り返した。実際、ほとんどの作品の中には、リュックを背負って山道を登っている小さな自分の姿が描かれている。それは単に巨匠の作品を模写するだけで終わらせないという印であり、彼らが築き上げた造形世界に宿る精神を探究しようとする意志でもある。ある意味ではこの過程は単なる模写と見なされるかもしれない。しかし私にとって彼らの山水は、時間や物理的制約に縛られることなく自由に歩き回ることができる空間であり、無限の想像力を与えてくれる世界であった。
このような過程を歩んでいくうちに、ある瞬間に新しい好奇心が生まれた。現代のすべての創作は「編集の芸術」であると言われている。これまで古典の中を歩きながら出会った山水の断片を取り出し、私が見たい場所、あるいは望む場所に配置してみたらどうなるだろうかと考えるようになった。数多くの古典名画に触れる中で、特に心惹かれた画家、樹木、岩、雲などを切り取り、それらを適切な場所に再配置して、自分が見たい場面を演出する作業を行った。それはまるで観念山水の夢を見ようとするような感覚であった。その成果の初期段階が、ポートフォリオに収められている《洪中山水(2016)》である。
この作品(編集された山水)は最初は好奇心から始まったが、古典絵画の中を歩いてきた長い旅を一度整理する作業になったように思う。こうして17年という歳月が流れた。
最近になって、本格的に写生を始めた。これまで経験してきた観念の世界と、写生によって目の前に広がる現実の世界が衝突していることを、身体で感じている。そしてその反応はすぐに筆先に現れる。混乱しているようにも思えるが、これは私が選んできた道の自然な結果である。観念と実体を見る視点はそれぞれ異なるが、これから私が取り組むべき仕事は、観念に偏っていた重心を現実的側面と均衡させることなのではないかと思う。私は極端に偏った関心のもとで、孤立した環境の中で絵を描いてきたことを誰よりもよく知っている。その結果、私の作品には社会性が欠けており、学問的な深みがないために高雅な趣を欠いていると感じている。しかし幸いにも、私にはまだ時間が残されており、自分の欠点を十分に克服できると信じている。「模倣、変形、創造」という過程の中で、私はいまどこに立っているのだろうか。常に自分自身に問い続け、絶えず省察している。
2020年12月 作家ノート